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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있어 다녀왔다. 장례식장엔 죽음의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지만 달갑지 않다. 이왕이면 생을 연장하고픈 마음에 오래전 제왕들은 불로초를 구하고자 그토록 안간힘을 썼던 모양이다. 인류의 문명이 진보하면서부턴 그와 같은 시도들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심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변화가 상당하단 사실을 부인할 순 없지만, 아무런 노력도 않고 오로지 천지신명을 향해 두 손 모으는 건 어리석은 태도로 여겨지곤 한다. 우리나라의 의학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수준을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의 의술을 경험하고자 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단 소리를 듣기도 했다. 모든 게 그러하듯 의학 분야 역시 급격히 발전했다. 100년, 아니 50년 전만 하여도 모든 것은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했다. 제중원은 갑신정변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거물이었던 민영익을 살려낸 알렌은 제중원에서 1년 넘게 진료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도 채 되지 않았고 임상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서양 의술이 그만큼 높은 수준을 갖추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었다. 제중원의 원래 명칭은 광혜원이었다. 은혜를 널리 베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다분히 왕정복고적인 색채가 풍긴다. 허나 2주 만에 사람을 구하는 집이라는 제중원으로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병원다운 명칭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칭과 함께 근대식 병원이 도입되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의학이라는 무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찾은 많은 이들은 포교를 내심 의도했다. 일종의 ‘의료선교’를 위한 지역으로 우리나라를 택한 것인데, 성공적이라는 말은 못하겠다. 일단 병원 운영이 만만치가 않았다. 정부에 예속적이었으며 이후로는 제정 문제로 신음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전이었던 만큼 환자를 받아 치료하는 게 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탓이 크다. 일제 강점기엔 더더욱 병원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외국인 선교사에게만 의존할 순 없는지라 우리나라 의사를 양성해야 했는데, 일제는 조선인의 고등교육 자체를 부정했으니 말이다. 의학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일은 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브란스를 살펴보는 일과 적잖은 부분 겹쳤다. 세브란스가 길러낸 인물 중 그만큼 걸출한 인물이 많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지금이야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해도 들어가기가 어려운 곳이 의대인데, 당시에는 완전히 해체되지 아니 한 신분제로 인해 백정 의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신분이 인격의 고결함을 결정하진 않는다는 것을 세브란스가 배출한 이들의 면모를 보며 깨달았다. 김필순, 이태준, 김창세, 배동석 등 적잖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고민했고 실천으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숙연함마저 느꼈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필요로 했던 건 건전한 마음이었다. 오늘날 훌륭한 의료인들은 넘친다. 그들의 노고가 아니었더라면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많은 질병들이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환자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보듬는,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이들이 요즘 들어 부쩍 증가하지 않았나 싶어 안타까움이 인다. 몇 해 전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인성 검증 없는 입시구조 하에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걸 돈이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의 속성도 경계가 필요하다. 가난한 환자의 치료를 거부한다거나 돈이 되지 않는 수술을 행하지 않는 등의 행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의사 개개인에게 있어 바람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이는 옳지 않다. 오로지 돈 있는 사람만이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어느 누가 선언할 수 있단 말인가! 괜찮은 의사가 되는 일이 왠지 예전보다 현재 훨씬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2005년 4월 세브란스 병원은 1,0004병상 규모로 탈바꿈했다. 1962년도에 완공돼 낙후했던 시설을 정비한 결과였다. 오늘날 신촌 일대를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거대한 병원의 모습에 눈길을 드리우게 된다. 발달한 의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최근 들어서는 이름조차 낯선 다양한 유행병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메르스(mers)로 인해 사람이 죽기까지 했다. 초창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앞장섰던 숭고한 정신들을 떠올려본다. 일종의 도전과도 같이 여겨지는 이런 상황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바로 기본으로 되돌아가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무나 당연해서 외려 잊고 살았던 ‘기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 제중원과
‘새로 지은 제중원’이라 불린 세브란스를 가꾼 사람들
이 책은 한국 최초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의 탄생부터 해방과 6·25전쟁을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에 몸담았던 의료선교사와 한국인 의료진의 활동 및 일대기를 다루었다.
한말에서 한국근현대 시기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의료진은 단순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만을 치료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전쟁, 개발독재로 암울한 시기에도 시대와 고통을 함께했고, 계몽운동, 독립운동, 난민구호, 민주화, 산업화 등을 주도하며 많은 이들의 사표가 되었다. 이들 중에는 알렌, 헤론, 에비슨 등과 같은 제중원 초기의 인물과 박서양, 김필순 등 최초의 면허의사,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프랭크 스코필드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도 있다. 하지만 묵묵히 진료, 연구,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수행한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이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1부는 갑신정변 이후 제중원의 탄생부터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성립을 전후한 시기까지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뤘으며, 제2부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부터 1970~1980년대까지 활약했던 인물 중에서 한국의료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뤘다. 이 책을 통해 격랑 속 한국근현대사에서 세브란스병원이 제중원 창립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떠한 굴곡을 거쳤는지,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다양한 경험들을 읽을 수 있다.
1. 제중원에서 세브란스까지
갑신정변과 알렌의 등장
알렌의 의료선교와 제중원의 탄생
재동 제중원에서 도동 세브란스병원까지
제중원 규칙의 제정과정
불편한 동거의 시작, 제중원의 운영
한국 최초 서양의학교육의 시작, 제중원의학당
19세기 조선의 질병양상 분석,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
조선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산 존 헤론
신앙의 원칙을 고수한 찰스 빈턴
제중원 최초의 여의사, 릴리어스 호턴
조선의 간호교육과 간호사업을 개척한 에스더 쉴즈
에비슨과 제중원 운영권의 이관
세브란스병원의 건립
에비슨과 최초의 면허의사들
세브란스와 그의 시대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의원
서양의학에 대한 편견에 도전한 제시 허스트
간농양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한 알프레드 러들로
한국인의 마음까지 헤아린 정신과 의사, 찰스 맥라렌
한국 최초의 치과학교실을 설립한 윌리엄 쉐프리
조선의 간호 발전에 일생을 바친 에드나 로렌스
열정적인 연구와 교육,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제임스 반버스커크
서른네 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의 설립과 발전
2. 제중원·세브란스 사람들
백정에서 의사가 된 박서양
의사를 넘은 독립운동가, 김필순
몽골을 치료한 의사, 이태준
독립을 위해 민족의 건강을 살핀 김창세
삼일운동을 주도한 세브란스인, 배동석
여성해방을 꿈꾼 간호사, 정종명
보건간호학의 개척자, 이금전
농촌위생의 개척자, 이영춘
크리스마스실의 계승자, 문창모
귀환동포를 구제한 세브란스학도대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쓰러져간 진달래, 최정규
후학 양성과 기술개발로 국력을 키우고자 한 유전
한국 최초의 안과·이비인후과 의사, 홍석후
사회적 통념을 넘어 새로운 길에 도전한 신필호
세브란스의 영원한 스승, 김명선
인본주의와 과학주의를 실천한 정신의학자, 이중철
기초의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윤일선
근대 해부학의 토착화를 이끈 최명학
암수술의 대가, 민광식
간호학의 현대화를 이끈 홍신영
신경외과학의 분과체계를 확립한 이헌재
최초의 판막수술과 개심술을 주도한 홍필훈
의학교육과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한 조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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